진락공 이자현 부도 진락공은 이자현이 죽고 난 후 임금이 내려준 이자현의 시호로 청평사를 세 번째로 중창한 고려시대 이자현(1061~1125)의 부도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만들어진 양식으로 볼 때 1700년대 이후에 건립된 것으로 보인다. 이자현의 생존 시기와 600년의 시간 차이가 나기 때문에 다른 스님의 부도라는 설도 있고 기록에 의하면 이자현의 유골은 질그릇으로 만든 함에 넣어서 청평사 북쪽의 청평식암 근처 바위 틈에 안치했다고 한다. -안내문에서 발췌-
묘하게 기울어진 듯한~
영지 명문 바위 이 바위의 윗면에 한문으로 지은 시가 새겨져 있다. 옮겨 적으면 다음과 같다.
심생종종생: 마음이 일어나면 모든 것들이 생겨나고 심멸종종멸: 마음이 사라지면 모든 것들이 사라지네 여시구멸이: 이와 같이 모든 것들이 사라지고 나면 처처안락국: 곳곳이 모두가 극락세계로구나
스님이 깨우침을 얻은 후 지은 시라는 뜻의 오도송이라고 알려져 있다. -안내문에서 발췌-
근데 어느 건지는 정확히~ 아무래도 제일 큰 바위가 아닐런지 ㅎㅎ
영지 고려시대 이자현이 조성한 것으로 조선 초기 김시습의 한시에도 언급되어 있다. 영지는 전체적으로 직사각형의 연못으로, 부용봉에 있던 견성암이 연못에 비친다고 해 지어진 이름이다. 지금도 연못에 물결이 일지 않으면 부용봉이 물 속에 그림자처럼 비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예전에는 장마가 지거나 가뭄이 들어도 물이 늘거나 줄지 않았다고 한다. 이렇게 정원의 일부처럼 만든 연못을 연지라고 하는데 사찰이나 궁궐에 이런 연못을 조성하는 경우가 많았다. -안내문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