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학생들로 사회도 보고~

 

반응형
블로그 이미지

앵가

캬륵!!!

,
반응형

 

청소년 뮤직 페스티벌이 열려 동두천 시민회관에 들렸습니다. 태권도 격파 시범부터 볼 수 있었던~

실패도 있었지만 다들 돌아가며 열심히~

댄스 타임도 있고 귀엽던~ ㅎㅎ

 

반응형
블로그 이미지

앵가

캬륵!!!

,
반응형

 

리움 미술관에 마우리치오 카텔란 전시가 열린다는 말에 예약해 보려 했지만 가끔씩 들여다보다 보니 몇 달을 실패하다 드디어 막판에 성공해서 다녀왔습니다. 비가 오기도 했고 이동 시간이 많이 들어서 로비의 작품들은 못 봤네요. ㅜㅜ 그래도 무료 전시라 부담 없이 대가의 작품들을 볼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대부분 키치 해서 지금 봐도 잘 어울리는 게 마음에 드네요. ㅎㅎ

무제, Untitled 1999

검은 캔버스가 알파벳 '제트(Z)> 모양으로 찢어져 있습니다. 캔버스를 찢은 것은 카텔란이 최초는 아닙니다. 1950-60년대 이탈리아 화가이자 조각가 루치오 폰타나(Lucio Fontana)는 색면 캔버스에 대각선 방향으로 칼자국을 내 평평한 캔버스 너머의 공간을 열고자 했습니다. 이러한 시도는 파괴를 통해 창조하는 역설이자 미술 전통의 제약을 뛰어넘는 혁신이었습니다. 이는 미술 제도의 경계를 시험하고, 끊임없는 도발로 미술의 역할을 질문하는 카텔란의 태도와 맞닿아 있습니다. 하지만 카텔란은 대각선 방향으로 캔버스를 훼손한 폰타나의 대표작을 그대로 모방하는 대신 지그재그 모양으로 칼집을 냅니다. 수많은 대중 매체를 통해 리메이크된 허구의 인물 '조로'처럼 말입니다. 조로는 가난하고 고통받는 이들을 구하고 정의를 구현한 다음 현장에 재빠르게 '제트(Z)를 그려놓고 홀연히 사라집니다. 이처럼 이 검은 캔버스는 허구적 인물과 실존 인물, 대중문화 속 캐릭터와 미술사의 거장이 교차하는 장으로 거듭납니다.

-안내문에서 발췌-

보고 바로 조로가 생각나긴 했지만 진짜 조로였을 줄이야 ㅎㅎ 해설도 무료로 골전도 이어폰과 연결된 스마트폰으로 들을 수 있어서 참 좋았습니다.

보이드, Void 2019

카텔란을 닮은 두상 조각에 카란의 모든 작품을 축소해 만든 작은 모형이 무질서하게 붙어 있습니다. 이처럼 작품들이 빼곡하게 축적된 얼굴의 제목은 빈 공간을 뜻하는 <보이드(Void)>입니다. 이러한 역설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요? 미술사에서 '보이드'란 제목은 프랑스 신사실주의 작가 이브 클랭(Yves Klein)이 1958년 이리스 클레르 갤러리(Iris Clert Gallery) 공간을 텅 비운 전시 《더 보이드(The Void)))를 소환합니다. 하지만 카텔란의 <보이드>는 시각적으로는 이브 클랭의 동료 작가인 아르망의 '축적(Accumulation) 작업을 전용한 것처럼 보입니다.

신사실주의 작가들이 비물질과 물질의 또 다른 가능성을 실험하며 시대상을 재현했다면, 카텔란은 이러한 미술의 실험정신을 개인적 서사와 익살스럽게 교차시키며 미술의 신화를 농담처럼 벗겨버립니다. 루치오 폰타나의 상징적 제스처가 조로의 제트(2)로 희화되듯, 이 작품은 신사실주의 작가들의 비움과 채움을 교차하여 카텔란의 무질서하고 혼돈스러운 작가적 정체성을 냉소적으로 재현하며 '보이드'를 역설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더불어 이 작품은 30 프린팅 기법을 도입한 것으로, 작가의 수작업을 거치지 않는 개념미술의 외연을 오늘날의 기술로써 확장합니다.

-안내문에서 발췌-

자신의 작품들을 모두 덩어리에 붙여낸 게 말년의 작품으로 딱 어울릴만한 주제가 아닐까 싶습니다.

현재 전시되어 있던 작품들도 다수가~

보이드라지만 오히려 흰 공간이라 팽창하는 느낌도 듭니다.

초입에 맞이해주는 작품으로 잘 어울렸습니다.

언뜻 괴혼 느낌도 나고~ ㅎㅎ

무제, Untitled 2001

여기 아주 작은 엘리베이터가 있습니다. 누군가가 타기를 기다리는 듯 문이 열리고 닫히는 소형 엘리베이터는 전시장 곳곳에서 만날 수 있는 작은 동물 친구들을 위한 것일까요? 카텔란은 작품을 크게 부풀려 스펙터클을 연출하기보다 여느 건물에서나 볼 수 있는 요소를 축소하여 작품의 권위를 걷어내는 동시에 동화적인 상상력을 이끌어냅니다. 이에 미술관은 훌륭하고 거대한 작품을 눈으로만 감상하고 지나치는 곳이 아니라 사물을 낯설게 만들어 우리 주변을 되돌아보게 하는 경험을 위한 장소가 됩니다.

-안내문에서 발췌-

거대한 벽의 밑, 생쥐가 다닐 것 같은 엘리베이터는 개폐도 되고 소리까지 나는 게 진짜 재밌었네요. ㅎㅎ

다들 기다렸다가 찍길래 귀여워서 한 번~

 

무제, Untitled 2008

누군가 신다 버린 낡은 부츠에 식물이 자라고 있습니다. 2008년 이 작업을 처음 선보인 독일 풀하임-스톰멜른(Putheim-Stommeln) 유대교 회당은 1930년대 반유대주의 나치 정권의 탄압으로 철거될 운명이었지만, 한 농부가 회당을 곳간으로 전용하여 겨우 살아남았습니다. 90년대에 지역 문화 센터로 개조된 회당은 지금까지 건재합니다. 새로운 생명의 요람이 된 부츠는 역경 가운데 놀라운 저항과 회복의 힘을 보여준 회당의 역사처럼 희망의 메시지를 전합니다. 한편, 낡은 신발은 반 고흐가 즐겨 그리던 소재이기도 합니다.

흙투성이 신발을 그린 고흐의 그림에서 소박한 소재로부터 숭고한 가치를 읽어내는 순례자의 마음이 전해집니다. 이탈리아의 농가에서는 헌 신발에 꽃이나 허브를 심어 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특별할 것 없는 일상과 고된 세월, 심지어 죽음을 연상하기도 하는 주인 없는 부츠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어지는 생의 주기를 상기합니다.

-안내문에서 발췌-

이탈리아인답게(?) 고추를 심어 놓았는데 한국과도 잘 어울리네요. ㅎㅎ

노베첸토, Novecento 1997

말이라는 동물을 생각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시나요? 의용을 자랑하며 우아하게 전진하는 말은 문화사적으로 강력한 영웅적 이미지로 사용되곤 했습니다. 하지만 천장에 매달려 있는 이 말은 중력의 힘에 항복하여 다리를 길게 늘어뜨리고, 고개를 아래로 떨구고 있습니다.

작품의 제목 <노베첸토(Novecento)>는 1900년대를 뜻하는 동시에 양차 세계대전을 통과하며 이탈리아 파시즘의 흥망성쇠를 그린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Bernardo Bertolucci) 감독의 장편 영화 제목이기도 합니다. 21세기를 당면한 1997년 처음 선보인 이 말은 위를 향해 부상하는 힘과 아래로 끌어당기는 힘 사이에 있습니다. 유예된 상태의 말은 전쟁으로 얼룩진 20세기의 이상과 몰락을 상징하는 동시에 다가올 미래를 향한 엄중한 경고이기도 합니다.

-안내문에서 발췌-

박제 말을 사용해서 그런지 꽤 실감 납니다.

정면에서는 좀 더 기괴하니~

수십 년이 지났지만 잘 유지되는 게~

2층에서 봐도 무게감이 좋네요.

 

반응형
블로그 이미지

앵가

캬륵!!!

,
반응형

 

Coming To You부터~

저스틴 비버의 Love yourself 커버도 들려줬네요.

 

 

 

반응형
블로그 이미지

앵가

캬륵!!!

,
반응형

 

이아람의 공연이 있어 들러봤는데 역시 괜찮았던~ 울랄라 순정 농부 상담소 OST였던 좋아해는 공연하지 않았지만 ㅎㅎ

낭만이 필요해

 

Highway

 

맥주 어때!

 

 

반응형
블로그 이미지

앵가

캬륵!!!

,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