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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디비도비디부, Bidibidobidiboo 1996

다람쥐와 그 크기에 알맞은 미니어쳐 살림이 아기자기하게 놓여있습니다. 멀리서 보면 동화 속 한 장면 같지만 가까이서 보면 어떨까요? 테이블에 축 늘어진 다람쥐의 자세와 싱크대에 쌓인 더러운 접시, 그리고 발치에 놓인 권총을 통해 이 작은 동물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것을 유추할 수 있습니다. '칩 앤 데일'처럼 애니메이션 속 다람쥐 캐릭터는 장난기가 가득하지만, 여기 이 다람쥐는 카텔란의 유년 시절을 재현한 듯한 평범한 이탈리아 노동자 가정에서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했습니다.

디즈니 애니메이션 신데렐라에서 누더기 옷을 입은 소녀를 공주로 만들어준 요정 대모의 주문 비비디 바비디 부'도 이러한 현실의 불행을 막을 수는 없었던 걸까요? 귀여운 동물의 크기에 맞게 축소된 세계는 오히려 냉혹한 현실의 무게를 더합니다.

-안내문에서 발췌-

5편에 이어서~

 

[리움 미술관] 마우리치오 카텔란 : WE - 5

비밀, Secrets 1998 기이한 자연사 박물관에 전시된 표본 같기도 한 이 작품은 그림 형제의 동화 (<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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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니어처지만 묘하게 현실감이 드는...

코미디언, Comedian 2019

커다란 벽에 덕테이프로 붙인 바나나 한 개가 있습니다. 이 작품은 2019년 12월 유망한 아트페어인 아트바젤 마이애미에 처음 등장했습니다. 특별할 것 없는 바나나를 예술가의 지시에 따라 단순히 벽에 붙인 이 작품이 120.000달러에 팔린 것부터 한 작가가 퍼포먼스로써 바나나를 떼서 먹어버린 일, 그러나 그저 신선한 새 바나나로 교체되었고 몰려든 인파로 인해 부스 운영이 어려워지자 결국 작품을 내린 갤러리의 선택까지, 이 작품은 거듭해서 논란을 일으켰습니다.

이처럼 카텔란은 작품과 작품이 아닌 것을 판단하고 작품의 미적, 경제적 가치를 결정하는 미술 제도를 회피하는 대신 오히려 한 가운데 뛰어들어 그 모순을 드러냅니다. 바나나는 여전히 우리에게 질문합니다. 점차 썩어갈 운명인 바나나는 어떻게 예술작품이 될 수 있을까요? 누구든 만들 수 있는 작품이 이토록 비싼 값에 팔린 사건에 대해 어떤 생각이 드시나요? 수많은 사물 중에 왜 하필 바나나였을까요?

-안내문에서 발췌-

전설의 바나나 작품~

사랑이 두렵지 않다, Not Afraid of Love 2000

아기 코끼리가 눈과 코 부위를 뚫은 흰 천을 뒤집어쓴 채 서 있습니다. 누구나 알고 있지만 대놓고 말하지 못하는 문제불 일러 "방 안의 코끼리(elephant in the room)”라고 표현합니다. 이 작품은 코끼리를 실내로 들어와 이 표현을 그대로 구현합니다. 이곳의 모두가 뻔히 보고 있지만 말하지 않는 것이 있는 걸까요? 이 코끼리는 미국 백인 우월주의 결사단체 쿠 클럭스 클랜(Ku Kiux Klan, KKK)의 전형적인 의복을 상기합니다.

2000년 뉴욕 마리안 굿맨 갤러리(Marian Goodman Gallery)에서 개최한 첫 개인전에서 선보인 이 작업은 뉴욕에 입성한 당당한 예술가의 모습 대신 수줍은 듯 몸을 가린 코끼리를 제시하여 언급을 꺼리는 미국 내 사회적 갈등을 암시합니다.

-안내문에서 발췌-

 

작은 부스 공간 안에 꽉 차서 속담과 더 잘 어울리는~

모두, All 2007

바닥에 나란히 놓인 아홉 개의 조각은 무엇을 나타내는 걸까요? 구체적으로 묘사된 신체 부위는 없지만 천으로 덮은 시신이라는 것을 어렵지 않게 읽어낼 수 있습니다. 나아가 누가 어떻게 희생된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여러 사람의 목숨을 앗아간 비극적인 사건이 일어났다고 유추하게 됩니다.

우리가 이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미디어를 통해 참사의 현장이나 죽음의 재현을 간접적으로 마주한 일이 있기 때문입니다. 평평한 스크린을 통해 반복적으로 송출되는 전 세계의 사건사고 중 한 장면을 펼쳐놓은 듯한 이 작품은 기념비에 자주 쓰이는 카라라 대리석으로 만든 것입니다. 아홉 개의 얼굴 없는 대리석 조각은 익명의 죽음에 대한 기념비로, 보는 이 각자에게 깊이 새겨진 비극을 떠올리게 합니다. 한편, 섬세하고 현실적인 천의 주름 표현은 18세기 이탈리아 예술가 쥬세페 산마르티노(Gjuseppe sanmartino)의 <베일을 쓴 그리스도(The Veiled Christ)> 처럼 숭고한 존재감을 자랑하여 눈을 떼기 어렵습니다. 마지 참혹한 현장임에도 구경을 멈출 수 없는 것처럼 말입니다.

-안내문에서 발췌-

역시나 카라라 대리석으로 멋진~

무제, Untitled 2007

사냥꾼은 자신의 성공을 과시하기 위해 사냥감의 머리를 박제하여 벽에 걸어 장식하곤 합니다. 하지만 여기 머리를 제외한 말의 몸통만이 벽에 걸려 있습니다. 사냥꾼의 트로피를 반전한 이 작업은 벽의 뒷면에 대한 궁금증을 불러일으킵니다.

하지만 왜 하필 말일까요? 카텔란은 종종 위용을 자랑하며 승리를 상징하는 말을 통해 오히려 실패와 좌절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벨라스케스(Diego Velazquez)와 같은 대가의 그림에서 말은 위풍당당하고 역동적으로 그려지지만, 카텔란의 말은 어디론가 힘차게 도약하려다 벽에 가로막혀 관객과 엉덩이를 마주하는 수치스러운 모습으로 존재합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말의 처지는 영웅과 성공을 높이 사는 사회에서 오히려 좌절된 순간을 주목하게 합니다.

-안내문에서 발췌-

휘어진 목에 가해지는 무게가 느껴질 만큼 생생해서 무섭던~

찰리는 서핑을 안 하잖나, Charlie Don't Surf 1997

벌을 받는 듯 한쪽 벽을 향해 앉은 학생에게 가까이 가볼까요? 평범해 보이는 이 학생의 양손이 연필로 책상에 고정되어 있습니다. 카텔란은 어린 시절 자화상에 해당하는 작업의 제목에 찰리'라는 이름을 붙이곤 하는데. <찰리는 서핑을 안 하잖나(Charlie Don't Surf)> 역시 학교라는 사회에 좀처럼 적응하기 어려웠던 카델란의 유년 시절을 상징한다고 유추해 볼 수 있습니다. 책상에 십자가형을 선고받은 이 소년은 사회에서 청소년이 희망찬 미래와 동일시되는 한편 학교 안팎에서 극도의 경쟁과 폭력에 노출된다는 점을 상기합니다.

또한, 이 작품의 제목은 베트남 전쟁을 다룬 1979년 영화 <지옥의 묵시록(Apocalypse Now)>에 등장한 유명한 대사이기도 합니다. 전쟁광이자 서핑광인 미군 킬고어 중령이 내뱉은 이 대사에서 '찰리'는 베트남 게릴라 부대를 뜻하며, 무차별적인 폭력으로 점령한 영역을 마땅히 즐기겠다는 잔혹함을 암시합니다.

-안내문에서 발췌-

영화에서 나왔던 대사인지는 몰랐는데 영화를 안 봐서 뉘앙스가 잘 와닿지는 않았네요.

얼굴이 있을 줄은 ㄷ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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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가

캬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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