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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우리치오 카텔란 전시를 잘 보았던 리움 미술관이지만 아쉬운 점도 있었는데 바로 장애인 주차 공간에 장애인이 주차할 수 없었다는 점입니다. 비가 오는 날이었기에 차를 가져오신 분들이 많아서 일까 싶었지만 그것도 아니었네요.

물론 일선의 주차요원분들이 문제라기보다는 관리자가 시켰기에 이런 방침이 세워졌을 터이니 리움이란 이름값에 비해 더 아쉽게 다가오는 바였습니다.

 

[리움 미술관] 마우리치오 카텔란 : WE - 7

무제, Untitled 2007 한 여성이 등을 보인 채 작품 운송 상자에 고정되어 있습니다. 섬뜩할 만큼 현실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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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내부의 장애인 주차 구역은 비워져 있었지만 세울 수 없었는데 물건이 이동하는데 걸릴 수 있다는 고지만 받았네요. 작업 차량도 세울 수 있고 공간이 따로 없는 것도 아닌데 이런 자리에 장애인 주차구역을 만들고 그 이유를 들어 장애인 주차를 막는 눈 가리고 아웅 하는 방침은 정말 리움 미술관에 대해 좋게 가져왔던 인식을 바꾸어 놓게 만드는 사건이었습니다. 작업도 하는지 안 하는지 모를 정도의 작업량이었고요.

입구부터 주차를 막아서 내부가 비어있는지 몰랐는데 사정사정해서 들어와 보니 비워놓고 일반 차량들만 주차를 받아주는 모양새라 참... 물론 겨우 자리가 나서 일반 구역에 대 놓았지만 요즘 이렇게 운영하는 곳이 점차 사라지는 추세인데 미술관 중에서 그래도 나름 탑 급의 시설에서 이런 인식을 가지고 관리를 한다는 것은 너무 몰상식한 게 아닌가 하는 느낌을 받았네요.

 

안내나 진행하시는 분들 모두 친절하니 좋았지만 정작 장애가 있는 사람이 관문을 통과할 수 없는 시스템을 만들어 놓고 내부에 들어오니 친절하게 대하는 것은 어폐가 있지 않나 싶어 씁쓸해지는 경험이었습니다.

작품과 상관없는 리움 사진으로 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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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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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제, Untitled 2007

한 여성이 등을 보인 채 작품 운송 상자에 고정되어 있습니다. 섬뜩할 만큼 현실적인 이 작품은 미국 사진가 프란체스카 우드먼(Francesca Waadman)의 흑백 사진에서 영감을 받았습니다. 우드먼은 22살에 생을 마감하기 전까지 스스로 피사체가 되어 벌거벗은 내밀한 모습이나. 유령처럼 스치는 장면을 포착하는 강렬한 사진 작품을 남겼고, 사후에 큰 주목을 받았습니다. 카텔란은 그중 우드먼이 두 팔로 문간에 매달려 있고, 그 옆에 의자를 두어 죽음을 연상하는 사진에 매료되어 사진 속 인물을 실물 크기 모형으로 만들었습니다.

이 작품을 처음 선보일 때는 사진과 마찬가지로 모형이 문간에 매달린 모습으로 설치했지만, 엎드린 채 상자에 고정된 작품의 모습에 감명을 받은 이후로 카텔란은 나무 틀까지 통째로 전시하게 되었습니다. 사지와 허리가 고정되고 양손에 못이 박힌 모습은 예수의 십자가 혹은 순교자의 죽음을 연상하게 합니다. 생생하게 구현된 고난의 장면은 모형에 불과하지만 복잡다단한 감정을 일으키는 기념비로 재탄생되었습니다.

-안내문에서 발췌-

6편에 이어서~

일부러 손을 뒤집어 더 순교자의 느낌이 나는 작품이네요.

 

[리움 미술관] 마우리치오 카텔란 : WE - 6

비디비도비디부, Bidibidobidiboo 1996 다람쥐와 그 크기에 알맞은 미니어쳐 살림이 아기자기하게 놓여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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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송 박스 그대로라 독특하고 꼼꼼한 포장이 돋보입니다. ㅎㅎ

완충제도 그득하니~

 

아홉 번째 시간, La Nona Ora 1999

붉은 카펫 바닥에 작품 제작 당시 교황이었던 요한 바오로 2세(John Paul If)가 운석에 맞아 쓰러져 있습니다. 종교적 지도자이자 바티칸 시국의 원수인 교황에 파격적인 설정을 적용한 모습은 카텔란이 권위를 다루는 태도를 보여줍니다. 눈을 질끈 감은 채 딱딱하게 굳어 있는 교황은 인조 조각에 불과하지만 강렬한 장면을 연출하여 감상자의 즉각적인 반향을 불러일으킵니다. 이 작품은 짓궂은 농담에 불과한 걸까요, 아니면 권위에 대한 신랄한 비판일까요? 1999년 쿤스트할레 바젤(Kunsthalle Basel)에서 처음 선보인 이래로 전시된 장소와 맥락에 따라 다양한 반응을 일으킨 이 작품은 전시장을 넘어 사회적 관행과 질서, 권위와 신념을 재고하도록 합니다.

-안내문에서 발췌-

교황을 운석 맞은 인간으로 표현하다니 진짴ㅋㅋㅋㅋㅋㅋ

무제, Untitled 2018

이 작품은 바티칸의 시스티나 성당을 축소하여 제작한 것으로, 2018년 카텔란이 상해 유즈 미술관에서 기획한 전시 "예술가와 마주하라(Artist is Present)'에서 처음 선보였습니다. 문화적 유산이자 유명한 관광지인 시스티나 성당을 통째로 모방한 과감한 시도 덕분에 우리는 직접 바티칸에 가지 않고도 미켈란젤로의 천장화를 감상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한편 실제 시스티나 성당의 천장화는 종교적 권위를 강조하기 위해 육안으로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높은 곳에 있고, 작품을 보존하기 위해 사진 촬영이 금지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복제품에 대한 경험이 원본에 대한 경험을 대체하거나 심지어 뛰어넘을 수 있을까요? 이러한 모형은 원본의 권위를 더하는 걸까요 아니면 해치는 걸까요? 이처럼 카텔란의 모형은 매개된 이미지나 각종 복제물을 통해 예술을 만나는 일이 흔해진 오늘날 원본성에 대한 의문을 확장합니다.

-안내문에서 발췌-

사각 박스가 뭔가 했더니~

시스티나 성당을 축소한 부스라 줄이 어마어마하더군요. 교황님은 옆으로 빠르게 관람할 수 있는데 여기만 제한 시간도 있곸ㅋㅋㅋㅋ 다만 휠체어가 들어갈 수는 없어 아쉬웠습니다. 신발과 휠체어의 차이가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레플리카를 모시는 주제와 어울리긴 하네요.

축소해서 바티칸에서 느꼈던 위용은 아니지만 그래도 예쁘긴 예쁜~

계단 위도 올라갈 수 없었던 ㅎㅎ

뭔가 미니어처로 팔면 좋을 듯한 구성인~

기다리는 시간은 꽤 길었지만 밝은 조명과 함께 환하고 성스러운 분위기는~

다들 열심히 찍느라 바쁜 ㅎㅎ

카텔란의 재밌는 작품들을 많이 만날 수 있어서 좋았던 전시네요. 게다가 무료라니 대단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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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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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디비도비디부, Bidibidobidiboo 1996

다람쥐와 그 크기에 알맞은 미니어쳐 살림이 아기자기하게 놓여있습니다. 멀리서 보면 동화 속 한 장면 같지만 가까이서 보면 어떨까요? 테이블에 축 늘어진 다람쥐의 자세와 싱크대에 쌓인 더러운 접시, 그리고 발치에 놓인 권총을 통해 이 작은 동물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것을 유추할 수 있습니다. '칩 앤 데일'처럼 애니메이션 속 다람쥐 캐릭터는 장난기가 가득하지만, 여기 이 다람쥐는 카텔란의 유년 시절을 재현한 듯한 평범한 이탈리아 노동자 가정에서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했습니다.

디즈니 애니메이션 신데렐라에서 누더기 옷을 입은 소녀를 공주로 만들어준 요정 대모의 주문 비비디 바비디 부'도 이러한 현실의 불행을 막을 수는 없었던 걸까요? 귀여운 동물의 크기에 맞게 축소된 세계는 오히려 냉혹한 현실의 무게를 더합니다.

-안내문에서 발췌-

5편에 이어서~

 

[리움 미술관] 마우리치오 카텔란 : WE - 5

비밀, Secrets 1998 기이한 자연사 박물관에 전시된 표본 같기도 한 이 작품은 그림 형제의 동화 (<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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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니어처지만 묘하게 현실감이 드는...

코미디언, Comedian 2019

커다란 벽에 덕테이프로 붙인 바나나 한 개가 있습니다. 이 작품은 2019년 12월 유망한 아트페어인 아트바젤 마이애미에 처음 등장했습니다. 특별할 것 없는 바나나를 예술가의 지시에 따라 단순히 벽에 붙인 이 작품이 120.000달러에 팔린 것부터 한 작가가 퍼포먼스로써 바나나를 떼서 먹어버린 일, 그러나 그저 신선한 새 바나나로 교체되었고 몰려든 인파로 인해 부스 운영이 어려워지자 결국 작품을 내린 갤러리의 선택까지, 이 작품은 거듭해서 논란을 일으켰습니다.

이처럼 카텔란은 작품과 작품이 아닌 것을 판단하고 작품의 미적, 경제적 가치를 결정하는 미술 제도를 회피하는 대신 오히려 한 가운데 뛰어들어 그 모순을 드러냅니다. 바나나는 여전히 우리에게 질문합니다. 점차 썩어갈 운명인 바나나는 어떻게 예술작품이 될 수 있을까요? 누구든 만들 수 있는 작품이 이토록 비싼 값에 팔린 사건에 대해 어떤 생각이 드시나요? 수많은 사물 중에 왜 하필 바나나였을까요?

-안내문에서 발췌-

전설의 바나나 작품~

사랑이 두렵지 않다, Not Afraid of Love 2000

아기 코끼리가 눈과 코 부위를 뚫은 흰 천을 뒤집어쓴 채 서 있습니다. 누구나 알고 있지만 대놓고 말하지 못하는 문제불 일러 "방 안의 코끼리(elephant in the room)”라고 표현합니다. 이 작품은 코끼리를 실내로 들어와 이 표현을 그대로 구현합니다. 이곳의 모두가 뻔히 보고 있지만 말하지 않는 것이 있는 걸까요? 이 코끼리는 미국 백인 우월주의 결사단체 쿠 클럭스 클랜(Ku Kiux Klan, KKK)의 전형적인 의복을 상기합니다.

2000년 뉴욕 마리안 굿맨 갤러리(Marian Goodman Gallery)에서 개최한 첫 개인전에서 선보인 이 작업은 뉴욕에 입성한 당당한 예술가의 모습 대신 수줍은 듯 몸을 가린 코끼리를 제시하여 언급을 꺼리는 미국 내 사회적 갈등을 암시합니다.

-안내문에서 발췌-

 

작은 부스 공간 안에 꽉 차서 속담과 더 잘 어울리는~

모두, All 2007

바닥에 나란히 놓인 아홉 개의 조각은 무엇을 나타내는 걸까요? 구체적으로 묘사된 신체 부위는 없지만 천으로 덮은 시신이라는 것을 어렵지 않게 읽어낼 수 있습니다. 나아가 누가 어떻게 희생된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여러 사람의 목숨을 앗아간 비극적인 사건이 일어났다고 유추하게 됩니다.

우리가 이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미디어를 통해 참사의 현장이나 죽음의 재현을 간접적으로 마주한 일이 있기 때문입니다. 평평한 스크린을 통해 반복적으로 송출되는 전 세계의 사건사고 중 한 장면을 펼쳐놓은 듯한 이 작품은 기념비에 자주 쓰이는 카라라 대리석으로 만든 것입니다. 아홉 개의 얼굴 없는 대리석 조각은 익명의 죽음에 대한 기념비로, 보는 이 각자에게 깊이 새겨진 비극을 떠올리게 합니다. 한편, 섬세하고 현실적인 천의 주름 표현은 18세기 이탈리아 예술가 쥬세페 산마르티노(Gjuseppe sanmartino)의 <베일을 쓴 그리스도(The Veiled Christ)> 처럼 숭고한 존재감을 자랑하여 눈을 떼기 어렵습니다. 마지 참혹한 현장임에도 구경을 멈출 수 없는 것처럼 말입니다.

-안내문에서 발췌-

역시나 카라라 대리석으로 멋진~

무제, Untitled 2007

사냥꾼은 자신의 성공을 과시하기 위해 사냥감의 머리를 박제하여 벽에 걸어 장식하곤 합니다. 하지만 여기 머리를 제외한 말의 몸통만이 벽에 걸려 있습니다. 사냥꾼의 트로피를 반전한 이 작업은 벽의 뒷면에 대한 궁금증을 불러일으킵니다.

하지만 왜 하필 말일까요? 카텔란은 종종 위용을 자랑하며 승리를 상징하는 말을 통해 오히려 실패와 좌절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벨라스케스(Diego Velazquez)와 같은 대가의 그림에서 말은 위풍당당하고 역동적으로 그려지지만, 카텔란의 말은 어디론가 힘차게 도약하려다 벽에 가로막혀 관객과 엉덩이를 마주하는 수치스러운 모습으로 존재합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말의 처지는 영웅과 성공을 높이 사는 사회에서 오히려 좌절된 순간을 주목하게 합니다.

-안내문에서 발췌-

휘어진 목에 가해지는 무게가 느껴질 만큼 생생해서 무섭던~

찰리는 서핑을 안 하잖나, Charlie Don't Surf 1997

벌을 받는 듯 한쪽 벽을 향해 앉은 학생에게 가까이 가볼까요? 평범해 보이는 이 학생의 양손이 연필로 책상에 고정되어 있습니다. 카텔란은 어린 시절 자화상에 해당하는 작업의 제목에 찰리'라는 이름을 붙이곤 하는데. <찰리는 서핑을 안 하잖나(Charlie Don't Surf)> 역시 학교라는 사회에 좀처럼 적응하기 어려웠던 카델란의 유년 시절을 상징한다고 유추해 볼 수 있습니다. 책상에 십자가형을 선고받은 이 소년은 사회에서 청소년이 희망찬 미래와 동일시되는 한편 학교 안팎에서 극도의 경쟁과 폭력에 노출된다는 점을 상기합니다.

또한, 이 작품의 제목은 베트남 전쟁을 다룬 1979년 영화 <지옥의 묵시록(Apocalypse Now)>에 등장한 유명한 대사이기도 합니다. 전쟁광이자 서핑광인 미군 킬고어 중령이 내뱉은 이 대사에서 '찰리'는 베트남 게릴라 부대를 뜻하며, 무차별적인 폭력으로 점령한 영역을 마땅히 즐기겠다는 잔혹함을 암시합니다.

-안내문에서 발췌-

영화에서 나왔던 대사인지는 몰랐는데 영화를 안 봐서 뉘앙스가 잘 와닿지는 않았네요.

얼굴이 있을 줄은 ㄷ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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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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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 Secrets 1998

기이한 자연사 박물관에 전시된 표본 같기도 한 이 작품은 그림 형제의 동화 (<브레멘 음악대》)의 주요 장면을 구현한 것입니다. 동화 속 늙은 당나귀, 개, 고양이, 수탉은 주인에게 버림받자 힘을 합쳐 난관을 극복하고 끝내 자유를 얻습니다. 이 백골 탑은 위기를 극복한 뒤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다고 믿고 싶은 동화 속 주인공조차 죽음이라는 운명을 피해 갈 수 없다는 엄준한 경고일까요? 아니면 살아 있는 존재는 죽음을 맞이할 수밖에 없지만 동화가 가르쳐 주는 연대의 정신과 창의력의 힘은 죽음조차 초월한다는 것을 말해주는 걸까요? 이 작품과 구성은 동일하지만 뼈 대신 박제 동물로 만든 조각 <가족> 또한 전시장에서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안내문에서 발췌-

4편에 이어서~

 

[리움 미술관] 마우리치오 카텔란 : WE - 4

무제, Untitled 1999 엄숙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이 거대한 화강암 기념비는 1874년 이래로 잉글랜드 축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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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탉이 아닌 까마귀라 독특한~

뼈로 된 브레멘 음악대는 처음 보는 듯 ㅎㅎ

가족, Family 1998

당나귀 위에 개, 개 위에 고양이, 고양이 위에 까마귀. 집을 나온 동물들이 서로에게 올라타 이를 드러낸 채 무언가를 위협하는 듯 울고 있습니다. 그림 형제의 동화 《브레멘 음악대>)에서 네 마리의 동물은 쓸모가 없어지자 자신을 처치해버리려는 주인을 떠나 자유로운 음악가가 되겠다는 꿈을 안고 브레멘으로 향합니다. 이 동물들은 더 이상 인간이 부여한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없을 정도로 늙고 약해졌지만 힘을 합쳐 강도 무리를 올리치고 그들의 은신처를 차지하여 행복하게 살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동화의 결말은 과연 해피엔딩이었을까요? 동물을 도구로만 취급했던 인간 사회를 떠나 구성한 이들만의 공동체는 그 이후에 다가올 운명에 어떻게 대처했을까요? 동화에서는 맨 꼭대기에 수탉이 올라앉아 위협적인 울음을 자랑했지만, 이 작업의 꼭대기에는 수탉 때신 까마귀가 앉아 있습니다. 소리를 지르는지 절규하는지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습니다.

-안내문에서 발췌-

뼈 작품과 같은 연도라 재밌던~

 

뼈를 먼저 보고 박제를 보니 또 다르네요.

가족들 포스가 웬만한 상대는 이길 수 있을 듯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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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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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움 미술관에 마우리치오 카텔란 전시가 열린다는 말에 예약해 보려 했지만 가끔씩 들여다보다 보니 몇 달을 실패하다 드디어 막판에 성공해서 다녀왔습니다. 비가 오기도 했고 이동 시간이 많이 들어서 로비의 작품들은 못 봤네요. ㅜㅜ 그래도 무료 전시라 부담 없이 대가의 작품들을 볼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대부분 키치 해서 지금 봐도 잘 어울리는 게 마음에 드네요. ㅎㅎ

무제, Untitled 1999

검은 캔버스가 알파벳 '제트(Z)> 모양으로 찢어져 있습니다. 캔버스를 찢은 것은 카텔란이 최초는 아닙니다. 1950-60년대 이탈리아 화가이자 조각가 루치오 폰타나(Lucio Fontana)는 색면 캔버스에 대각선 방향으로 칼자국을 내 평평한 캔버스 너머의 공간을 열고자 했습니다. 이러한 시도는 파괴를 통해 창조하는 역설이자 미술 전통의 제약을 뛰어넘는 혁신이었습니다. 이는 미술 제도의 경계를 시험하고, 끊임없는 도발로 미술의 역할을 질문하는 카텔란의 태도와 맞닿아 있습니다. 하지만 카텔란은 대각선 방향으로 캔버스를 훼손한 폰타나의 대표작을 그대로 모방하는 대신 지그재그 모양으로 칼집을 냅니다. 수많은 대중 매체를 통해 리메이크된 허구의 인물 '조로'처럼 말입니다. 조로는 가난하고 고통받는 이들을 구하고 정의를 구현한 다음 현장에 재빠르게 '제트(Z)를 그려놓고 홀연히 사라집니다. 이처럼 이 검은 캔버스는 허구적 인물과 실존 인물, 대중문화 속 캐릭터와 미술사의 거장이 교차하는 장으로 거듭납니다.

-안내문에서 발췌-

보고 바로 조로가 생각나긴 했지만 진짜 조로였을 줄이야 ㅎㅎ 해설도 무료로 골전도 이어폰과 연결된 스마트폰으로 들을 수 있어서 참 좋았습니다.

보이드, Void 2019

카텔란을 닮은 두상 조각에 카란의 모든 작품을 축소해 만든 작은 모형이 무질서하게 붙어 있습니다. 이처럼 작품들이 빼곡하게 축적된 얼굴의 제목은 빈 공간을 뜻하는 <보이드(Void)>입니다. 이러한 역설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요? 미술사에서 '보이드'란 제목은 프랑스 신사실주의 작가 이브 클랭(Yves Klein)이 1958년 이리스 클레르 갤러리(Iris Clert Gallery) 공간을 텅 비운 전시 《더 보이드(The Void)))를 소환합니다. 하지만 카텔란의 <보이드>는 시각적으로는 이브 클랭의 동료 작가인 아르망의 '축적(Accumulation) 작업을 전용한 것처럼 보입니다.

신사실주의 작가들이 비물질과 물질의 또 다른 가능성을 실험하며 시대상을 재현했다면, 카텔란은 이러한 미술의 실험정신을 개인적 서사와 익살스럽게 교차시키며 미술의 신화를 농담처럼 벗겨버립니다. 루치오 폰타나의 상징적 제스처가 조로의 제트(2)로 희화되듯, 이 작품은 신사실주의 작가들의 비움과 채움을 교차하여 카텔란의 무질서하고 혼돈스러운 작가적 정체성을 냉소적으로 재현하며 '보이드'를 역설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더불어 이 작품은 30 프린팅 기법을 도입한 것으로, 작가의 수작업을 거치지 않는 개념미술의 외연을 오늘날의 기술로써 확장합니다.

-안내문에서 발췌-

자신의 작품들을 모두 덩어리에 붙여낸 게 말년의 작품으로 딱 어울릴만한 주제가 아닐까 싶습니다.

현재 전시되어 있던 작품들도 다수가~

보이드라지만 오히려 흰 공간이라 팽창하는 느낌도 듭니다.

초입에 맞이해주는 작품으로 잘 어울렸습니다.

언뜻 괴혼 느낌도 나고~ ㅎㅎ

무제, Untitled 2001

여기 아주 작은 엘리베이터가 있습니다. 누군가가 타기를 기다리는 듯 문이 열리고 닫히는 소형 엘리베이터는 전시장 곳곳에서 만날 수 있는 작은 동물 친구들을 위한 것일까요? 카텔란은 작품을 크게 부풀려 스펙터클을 연출하기보다 여느 건물에서나 볼 수 있는 요소를 축소하여 작품의 권위를 걷어내는 동시에 동화적인 상상력을 이끌어냅니다. 이에 미술관은 훌륭하고 거대한 작품을 눈으로만 감상하고 지나치는 곳이 아니라 사물을 낯설게 만들어 우리 주변을 되돌아보게 하는 경험을 위한 장소가 됩니다.

-안내문에서 발췌-

거대한 벽의 밑, 생쥐가 다닐 것 같은 엘리베이터는 개폐도 되고 소리까지 나는 게 진짜 재밌었네요. ㅎㅎ

다들 기다렸다가 찍길래 귀여워서 한 번~

 

무제, Untitled 2008

누군가 신다 버린 낡은 부츠에 식물이 자라고 있습니다. 2008년 이 작업을 처음 선보인 독일 풀하임-스톰멜른(Putheim-Stommeln) 유대교 회당은 1930년대 반유대주의 나치 정권의 탄압으로 철거될 운명이었지만, 한 농부가 회당을 곳간으로 전용하여 겨우 살아남았습니다. 90년대에 지역 문화 센터로 개조된 회당은 지금까지 건재합니다. 새로운 생명의 요람이 된 부츠는 역경 가운데 놀라운 저항과 회복의 힘을 보여준 회당의 역사처럼 희망의 메시지를 전합니다. 한편, 낡은 신발은 반 고흐가 즐겨 그리던 소재이기도 합니다.

흙투성이 신발을 그린 고흐의 그림에서 소박한 소재로부터 숭고한 가치를 읽어내는 순례자의 마음이 전해집니다. 이탈리아의 농가에서는 헌 신발에 꽃이나 허브를 심어 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특별할 것 없는 일상과 고된 세월, 심지어 죽음을 연상하기도 하는 주인 없는 부츠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어지는 생의 주기를 상기합니다.

-안내문에서 발췌-

이탈리아인답게(?) 고추를 심어 놓았는데 한국과도 잘 어울리네요. ㅎㅎ

노베첸토, Novecento 1997

말이라는 동물을 생각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시나요? 의용을 자랑하며 우아하게 전진하는 말은 문화사적으로 강력한 영웅적 이미지로 사용되곤 했습니다. 하지만 천장에 매달려 있는 이 말은 중력의 힘에 항복하여 다리를 길게 늘어뜨리고, 고개를 아래로 떨구고 있습니다.

작품의 제목 <노베첸토(Novecento)>는 1900년대를 뜻하는 동시에 양차 세계대전을 통과하며 이탈리아 파시즘의 흥망성쇠를 그린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Bernardo Bertolucci) 감독의 장편 영화 제목이기도 합니다. 21세기를 당면한 1997년 처음 선보인 이 말은 위를 향해 부상하는 힘과 아래로 끌어당기는 힘 사이에 있습니다. 유예된 상태의 말은 전쟁으로 얼룩진 20세기의 이상과 몰락을 상징하는 동시에 다가올 미래를 향한 엄중한 경고이기도 합니다.

-안내문에서 발췌-

박제 말을 사용해서 그런지 꽤 실감 납니다.

정면에서는 좀 더 기괴하니~

수십 년이 지났지만 잘 유지되는 게~

2층에서 봐도 무게감이 좋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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